소리를 전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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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4/16/2025
게시 04/16/2025
한수정

소리를 전시한다는 것은 일견 이상하게 들린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이것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소리를 재료로 하는 대표적인 예술장르인 음악은 흔히 시간예술이라 일컬어진다. 사실 이것은 시간에 관한 굉장히 특정한 태도를 강하게 보이는 표현이라 생각되지만1, 그러한 특정한 태도를 감안하더라도 음악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간 속에 펼쳐질 수 밖에 없는 듯이 보인다. 과연 어느 누가 시공간의 특정 좌표에서 음악의 전체 부분을 인식할 수 있단 말인가?2

반면 ‘전시한다’라는 말은 주로 시각예술에 사용된다. 그리고 시각예술은 공간예술이라 불린다. 전통적인 시각예술 매체인 회화, 조각 등은 대표적인 공간예술이다. 회화와 조각은 공간을 점유하며 감상자에게 감상된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해를 위해 덧붙이자면 비교적 현대적인 매체인 영상은 이 두가지 분류 모두에 중첩되는 위치를 점한다고 생각되어질 수 있다. 그것은 유형물에 고정되어 공간을 점유하면서도 어떻게든 감상자가 시간을 들여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리와 전시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두 가지 같지만서도…소리를 전시할 일은 생각보다 많다. 소리가 주된 요소로 작용하는 시각 작품을 전시하는 일을 포함하여, 소리 그 자체를 전시하는 일까지. 전자는 주로 영상일 것이고 후자는 주로 사운드 아트? 뭐 그런걸거다.3 기획자들에게는 상당한 고민을 요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시간적인 속성을 가진 소리를 어떻게 공간속에서 보여줄 것인가? (??? :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하셨죠?)

지난 3월 춘천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마침 너무나도 <소리를 전시하기>라는 이 고민에 너무나 부합하는 주제의 전시를 보게 되었다. (전시에 대한 혹평을 미리 사과드립니다. )

▣ 전시소개

뮤직아트센터 프로젝트 : 음악 브랜드 팝업 [Play & Pause]
《Play & Pause》는 ‘듣기’, ‘읽기’, ‘탐색하기’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음악을 조명합니다.
음악 플레이어의 다섯 버튼, ‘재생, 일시정지, 되감기, 빨리감기, 정지’ 키워드로 이어지는 이번 팝업은 손끝으로 카세트테이프를 되감아가며 반복해 감상하듯 음악이 가진 다양한 면모를 하나하나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습니다.뮤직아트센터에서 펼쳐지는 《Play & Pause》를 통해 음악이 머무르는 순간을 새롭게 만나길 바랍니다.

출처 : 상상마당 춘천 홈페이지

이 전시의 전시 소개를 읽어보면, 이 전시가 소리 중에서도 특별히 ‘음악’을 전시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시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소리 중에서도 ‘음악’은 특히나 여러가지 기획적 난점을 가지고 있는데, 음악은 대부분의 경우 시각적 요소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고 순수하게 청각적이기 때문이다.

내가 위 전시에 실망했던 이유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음악을 전시하는 방법으로 가장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CD플레이어나 QR코드 등의 음원이 담긴 유형물을 공간에 배치하고 감상자로 하여금 접근하게 하는 방법과, 그러한 레퍼런스 음악의 리서치 자료를 함께 전시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이러한 상상에서 한치도 어긋나지 않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춘천 상상마당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두 개의 건축물 안에, QR코드와 앨범 자켓 등이 드문드문 놓여있었을 뿐이었다. 전시 형태 외에 전시의 내용에 있어서도 기획자의 취향의 전시에 지나지 않다고 느껴졌다.

함께 전시에 간 두돌도 안된 나의 아기는 재미있게 본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이 아기에게 재미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

이 전시는 나로 하여금 12년전 봤던 아라아트센터의 음악 전시를 떠올리게 하였다. 지금은 정보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이 전시는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제목으로 2013년 8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열렸다.

출처 : 아라아트센터 홈페이지, 신경섭 촬영

이 전시는 위의 상상마당 전시와 비교하기에 규모부터 다른 전시이지만, 사실 당시에 나는 상상마당 전시를 봤을때와 비슷한 실망감을 느꼈다. 하지만 청음 부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빈백 라운지 등 음악 감상을 위한 여러 장치가 고안되어 있었고, 당시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인중에는 여러번 감상하러 재방문한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내 실망감의 이유는 잠시 뒤로 물려두고, 이 전시에 대한 좋은 평가의 이유를 곱씹어본다.

이 전시의 여러 요소는 감상자로 하여금 “기존의 전시와 다르게 감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였다. 이를테면, 이 전시의 공간 곳곳에 배치된 청음 부스와 고품질의 헤드폰은 감상자로 하여금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음악을 감상할 마음이 들게 하였을 것이다. 빈백 라운지 또한 좀 더 음악 감상의 맥락으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애초에 ECM의 음악을 감상하러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 전시에서는 시간을 들여 음악을 감상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왔을지도 모른다. 즉, 이 전시의 여러가지 요소가 감상자로 하여금 이 전시에서는 좀 머물면서 시간을 들여 음악을 감상해야 한다는 어떤 태도의 전환을 유도했다. 나에게는 그 태도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사람들로 붐비는 청음부스나 빈백에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음악을 전시하고자 할 때, 전시의 내용(음악의 퀄리티?)이 동일하다면 기획자가 형식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전시에 대한 태도의 전환을 유도하는 기술>이다. 사람들은 음악회에서는 기꺼이 시간을 들여 음악을 감상한다. 하지만 전시에서는 시각적인 맥락을 기대한다. 이 맥락을 어떻게 전환시켜 기꺼이 음악의 시간성을 견디게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다.

음악 외의 다른 소리를 전시할 때는 고민해야 할 지점이 더 다를것이다. 이것은 음악을 전시하는 것보다는 더 수월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글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한다.

  1. 흔히 시간의 존재론 중 A theory로 불리는, “시간은 흐르는 것이다” 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 것으로 보인다. ↩︎
  2. “악보를 한순간에 사진찍듯 인식하는 사람은 가능하지 않나요?” 라고 되묻지 마라 제발. ↩︎
  3. 사운드아트에 대한 나의 시큰둥한 태도는 사운드아트에 대한 나의 몰이해에 기인한다. 나는 사운드아트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이에 대해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꼭 적어보고 싶다. “나중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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