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04/16/2025
게시 04/16/2025
Poème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유음 (ㄴ,ㄹ,ㅁ,ㅇ) 위주의 단어에서 평음 (ㄱ,ㄷ,ㅂ,ㅅ,ㅈ) 이 나오는 단어로 넘어가는 것이 아이에게 상당한 도전과제임을 알 수 있게 된다. 특이하게도, 평음을 사용하는 것과 평음이 앞에 나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 사이에도 약간의 단계가 필요하다. 마마! 맘마! 에서 아바! 로 넘어가는 것 뿐만 아니라, ‘이’거 에서 ‘그’거 로 넘어가는 것도 아이에겐 상당한 도전과제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영화 <왕의 남자> 의 명대사로 기억하는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라는 대사가 주었던 울림은, 사실은 여기와 거기라는 각각의 단어가 발달 과정에서 다른 위치에 있었다는 것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는 <왕의 남자> 가 기초로 한 연극 <이> 의 원본엔 없던 대사라는 것이다. 이 대사는 본래 윤영선의 희곡 <키스> 에 나오는 문장으로, 연극 <이> 를 무대로 올린 모 연출가가 <키스> 의 위 대사를 차용한 버전이 영화화 된 것이 바로 <왕의 남자> 이다. 이 때문에 윤영선 극작가는 소송까지 갔으나 대법원에서 끝내 패소하였고, 그 과정에서 병을 얻어 암으로 사망한 뒷이야기가 있다. 다만 이 지면에서 지적 재산권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연극 <키스> 가 본래 말하려고 했던 “여기” 와 “거기” 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연극 <키스> 는 무척 단순한 작품이다. 두 주인공이 나와서,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라는 말을 끝없이 변주한다. 둘의 대화는 계속 평행선이다. 그 이유는 두 주인공이 말하는 ‘여기’ 와 ‘거기’ 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가 여기에 없고, 거기에 없다는 말을 자꾸만 한다. 이는 독일인 슈트라우스와 프랑스인 로맹 롤랑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슈트라우스는 연극 <살로메> 의 가사를 프랑스어로 직접 번역하려 했고, 이 과정에서 로맹 롤랑에게 조언을 구했다. 주된 질문은 프랑스어에서의 어미, 예를 들어 Comme 의 -므 를 단음으로 발음할 것인지, 장음으로 발음할 것인지, 만약 장음으로 발음한다면 그 길이는 어느 정도로 규정할 것인지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로맹 롤랑은 다음과 같이 답신을 보낸다.
“독일어에서는 언제나 이것 아니면 저것이지요. 그러나 프랑스 시가 활동하는 것은 바로 장음과 단음, 강음과 약음의 중간부 입니다. 그것은 하프톤 속에서 무한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요.”1
그러면 우리에게 의문이 남는다. 프랑스 시의 그것처럼 그 중간의 무언가가 더 정확한 의사표현이 가능할 것인가? <키스> 는 부정적이었다. 등장인물들은 장음과 단음은 물론이고 비언어적 표현까지 최대한 사용하며 서로가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설명하려 하지만, 그 시도는 끝내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여러 번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거’ 를 발음할 수 있게 된 아이는 본인이 생각하는 ‘그거’ 가 무엇인지 손짓 발짓 눈짓을 하며 열심히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도 자주 발생한다. 설명하다 말고 아이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다음엔 더 잘 알아들어보겠다고 말하곤 한다.
최근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된 글이 있었다. 좋다고 알려진 방법으로 교육했다고 생각했던 아들이 본인이 의도한 바가 아닌 극단적 사상에 빠져가는 것을 깨닫고, 그 아들을 구출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해당 글은 수많은 이들의 응원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는데, 어떤 이의 글 중에 내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그렇게 아들과 나는 중간 어디선가 만나기로 했다. 우린 서로를 언제나 받아주고 구하기로 했다.”2
어쩌면 이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 보다도, 더 적확한 의사소통의 수단을 찾는 것 보다도, 중간 어디에선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혹여나 만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중간을 언제나 궁금해하고 찾아나갈 것이라는 그 믿음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윤영선의 <키스> 는 제목처럼 두 사람의 키스로 끝난다. 그 마지막 장면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여: 가까이 와.
서로 몇 걸음 다가간다.
남: 이제 말하지 마.
여: 그래.
남: 말하지 마라니까.
여: 그래.
남: 말하지 말라고.
여: 너도 하지 마.
남: 하지 말라고?
여: 그래,말.
남: 그래,말.
여: 아무 말도 하지 마.
남: 아무 말도.
여: 그래.
남: 그래.
여: 그래?
남: 그래.
여: 침묵.
남: 침묵.
여: 치임–
남: 치임–
여: 하지마.
남: 하지마.
여: 마.
남: 마.
사이.
‘마’라는 말을 반복하며 남자와 여자의 입모양이 점점 작아진다.
- 오카다 아케오, 음악을 듣는 법(2023), 끌레마 ↩︎
- Joyce Park, 2025년 1월 23일 페이스북 게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