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03/28/2025
게시 04/01/2025
Poème
아내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음색을 검은 구슬이 흐르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그 표현에 동의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내가 가진 구슬의 이미지가 아내가 가진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고, 또 하나는 나에게 있어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리를 들어도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자라는 과정에서 나에게 놀라움을 주었는데, 내가 음악에 대해 대화해 본 많은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며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고, 그 이미지가 가진 느낌을 토대로 음악을 재평가하는 것 처럼 보였다.
이는 사실, 미국의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에서 어느 정도 밝혀진 부분이기도 하다.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특정 음을 들을 때 마다 특정 색깔이 동시에 느껴지는 사람들을 찾아 연구하였고, 감각의 입력 과정에서 뇌의 여러 부분이 동시에 자극받는 것이 실제로 가능함을 밝혀내었으며 이를 공감각 (Synaesthesia) 이라 명명하였다.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 (Vikingur Olafsson) 은 이러한 공감각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다. 꼭 공감각이 아니더라도, 뇌에서 시각 이미지를 관장하는 부위와 청각 이미지를 관장하는 부위는 자주 겹치기 때문에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떠올린 이미지 역시 신경학적으로는 이러한 기전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를 들어 C음을 들을 때 마다 빨간색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이 그런데 빨간색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 C음은 불쾌한 종류의 감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지점을 느꼈다. 음악을 음 그 자체로 느끼기 보다, 동시에 떠오르는 다른 감각들이 불러일으키는 감정 때문에 해당 음악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것 처럼 보였다.
내가 이러한 감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감정은 음악을 향유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다만, 어떤 시점에서 느낀 감정이 해당 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한국에서 <네이든>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 <X+Y>을 보면, 자폐아인 주인공 네이든은 자신을 온전히 지지하던 아버지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교통사고로 즉사한 경험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는다. 사고 차량 안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며 본 신호들의 색 – 빨강, 노랑, 초록 – 은 네이든이 평생 집착하는 동시에 고통받는 색이 된다. 그런데 네이든이 수학영재로 뽑혀 대만에 가면서 이 색들에 새로운 이야기가 입힌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부모와 사회복지사의 손에서 벗어나 혼자의 힘으로 이국의 거리를 걸으며 발견한 신호등의 색은, 더 이상 본인이 지금껏 고통받던 그 색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샤를 구노의 Ave maria 이다. 많이 알려졌듯이, 이 곡은 바흐의 평균율 BWV 846 의 서곡에 멜로디를 입힌 것이다. 구노의 이 곡을 처음 들어보면, 어떻게 바흐의 단조롭게 들리는 이 곡에 이런 아름다운 멜로디를 입힐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비밀이 있다. 바흐의 원곡 멜로디를 하나의 화음으로 모아서 쳐 보면, 사실 구노의 멜로디가 원곡에 이미 숨어 있었음을 찾아낼 수 있다.
즉, 음악은 다층적이다. 작곡가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음악 속에 단 하나의 이야기만 담겨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듣는 이에 의해 완성되는 특징을 지니며, 특별히 듣는 이가 어떤 시간 속에서 그 음악을 듣느냐, 그 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느냐에 따라 그 음악이 비로소 형태를 가지게 된다. 다른 시간 속에서 듣는 다면 다른 감정을 불러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음악을 시간예술이라고 말하는 이유라고 본다.
예를 들어 나는 피아노를 성인이 되어 다시 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까랑까랑한 영창피아노와 같은 소리를 좋아했다. 그것이 어릴 때 내가 듣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벡슈타인 피아노 처럼 다소 물먹은 듯 먹먹한 소리를 좋아한다. 그 중에 어떤 소리가 더 우월하고 아름다운 소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지금의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그 소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