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세모난 피아노와 네모난 피아노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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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3/27/2025
게시 03/27/2025
한수정

세상엔 네모난 피아노와 세모난 피아노가 있어. 그런데 세모난 피아노 소리가 더 좋아.

우리 교회에 다니는 초딩 친구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 감탄했다. 과연, 세상에는 네모난 피아노와 세모난 피아노가 있고, 세모난 피아노 소리가 더 좋다. 어른들은 그것을 각각 업라이트 피아노와 그랜드 피아노라고 부르고 대개의 경우 그랜드 피아노의 소리가 압도적으로 좋다.1

아니, 사실은 ‘그랜드 피아노의 소리가 압도적으로 좋다’ 라는 표현보다는 업라이트 피아노와 그랜드 피아노는 다른 악기에 가깝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2 먼저, 두 피아노는 연주하는 방법이 다르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현의 배치와 건반의 특성상 그랜드 피아노보다 음량, 터치등의 미묘한 조절이 힘들고, 페달의 사용법도 다르다. 이는 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가 다른 목적을 가진 다른 종류의 피아노이기 때문이다. 흔히 현대적 피아노의 원형은 포르테피아노로, 이 포르테피아노를 개량하여 88개의 건반으로 정착된 것이 그랜드피아노라고 한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포르테피아노를 보다 소형화하고 가격을 낮춰 가정에 보급하려는 용도로 개발되었다. 즉, 그랜드 피아노와 업라이트 피아노는 같은 원형을 두고 각각 다른 목적으로 발전하였다.3 그리고 음악의 음량, 악상, 음색의 미묘한 조절에 그랜드 피아노가 압도적으로 뛰어나기에,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것은 물론 그랜드 피아노이다. 대부분의 클래식 음반 또한 그랜드 피아노로 녹음된다.

그런데 최근 몇년간 내가 젊은 거장이라고 여기저기 칭찬하고 다니는 두 명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이러한 통념을 깬 앨범을 내었으니 주목할만한 일이다. 비킹구르 올라프손(Víkingur Ólafsson)의 앨범 <From Afar>(2022)와 줄리우스 아잘(Julius Asal)의 앨범 <SCRIABIN · SCARLATTI – Deluxe Edition>(2024)이 그것이다. 이 앨범들의 공통점은 하나의 레파토리를 그랜드 피아노 버전과 업라이트 피아노 버전으로 각각 녹음한 두 장의 CD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개별 앨범에 대한 리뷰는 생략하도록 하고 (어쨌든 둘 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훌륭한 앨범임), 이들은 왜 따로 업라이트 버전을 녹음한 것일까? 단순히 로파이(lo-fi)유행이 클래식까지 침범한 것일까? 앨범을 들어보는 것 자체가 이에 대한 답을 약간은 제시해준다.

먼저, 업라이트 버전은 어떤 특정한 향수를 자극하는 면이 있다. 앨범의 감상자들 다수는 그랜드 피아노보다 업라이트 피아노를 연주해 본 경험이 더 많을 것이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그 제작 목적에 맞게 가정에 보급된 피아노이고, 전문적인 피아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직접 연주해 본 경험은 업라이트 피아노에 맞춰져 있다. 여기서 이 업라이트 버전이 자극하는 ‘향수’의 구체성이 드러나는데, 이 향수는 감상자의 ‘수행적인 추억’을 타게팅하고있다. 이것이 단순히 ‘친숙한’ 소리의 향수를 목적했다면 업라이트 피아노보다 그랜드 피아노로 잘 정음된 녹음버전에 익숙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잘 정제되고, 완벽한 비르투오소적인 연주에 감탄할지언정, 그것에 얽힌 여러가지 기억을 회상할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 업라이트 버전들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것들이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4적인 감각으로 녹음되었다는 것이다. 두 앨범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양모펠트를 두드리는 효과는 전적으로 업라이트에서만 가능한 주법이다. 음들이 넓게 퍼지지 못하게 펠트가 먹어 버리는 먹먹한 소리, 양모의 따뜻한 질감들이 아주 강조되어 녹음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실 실제 업라이트 피아노를 연주할 때도 느끼기 힘든 소리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녹음한 것이다.

두 연주자 모두 끝내 그랜드 피아노의 사운드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점도 흥미롭다. 두 앨범 모두 첫번째 CD는 그랜드 피아노로 녹음되었으며, 두번째 CD가 업라이트 피아노 버전으로 녹음되는 이중의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복’이라는 부차적인 효과를 발생시킨다. 사실 같은 레파토리를 똑같이 반복하는 것은 불필요한 구성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굳이 포함시켰다는 반복성. 나는 이것에서 성다영 시인의 시집<스킨 스카이>5를 떠올렸다. 이 시집은 같은 내용을 큰 글자로 한번, 보통 크기의 글자로 한 번 써서 두 가지 버전을 하나의 시집으로 엮어내고 있다.

Mark Lewis의 글 <모던은 우리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는가?(Is Modernity Our Antiquity?)>를 떠올린다. 업라이트 피아노는 우리의 새로운 고전이 되었는가? ….여튼 초딩친구야, 네모난 피아노 소리도 때로는 좋단다. 아줌마네 집 놀러와. 세모난 피아노, 네모난 피아노 둘 다 치게 해줄게.

  1. ‘좋다’ 라는 주관적이고도 객관적인 이 용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좀 속되게 설득해 보자면, 그랜드피아노의 가격이 훨씬 비싸게 형성되어 있다. 하다못해 피아노 연습실의 경우 업라이트 피아노의 경우 1시간 칠천원, 그랜드 피아노 방은 1시간 만원을 내야 한다. ↩︎
  2. 야마하(YAMAHA) 홈페이지, [그랜드 피아노? 업라이트 피아노?] 를 참고하였음. ↩︎
  3. 야마하(YAMAHA)홈페이지, [피아노 발명 이야기] 를 참고하였음. ↩︎
  4. 여기서 ASMR은 ‘일상소음’, ‘백색소음’ 등과 유사한 소리를 지칭하는 일상용어로 사용되었다. ↩︎
  5. 성다영, <스킨스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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