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동네 소리를 찾아서 – 1. 추단

Written in

by

작성 03/18/2025
게시 03/18/2025
Poème

얼마 전, 조성진이 라벨 앨범을 내었다. 나는 한국인 음악가에게 특별히 더 후한 평가를 하는 편이 아니고, 조성진의 음악을 좋아한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왠걸. 내가 들어 본 수많은 라벨 음악 중에서도 최고였다. 나는 당연히 해외의 평단도 호평 일색일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참담한 혹평이 줄을 이었다. 너무 급하다는, 내지는 너무나 단조롭다는 평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왜 그런 평론이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급하다는 것은, 급하지 않은 해석이 있었다는 것이다. 단조롭다는 것은, 단조롭지 않은 해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전자는 리히터 (Sviatoslav Richter) 를 이야기하고, 후자는 아르헤리치 (Martha Argerich) 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성진은 그들과 달랐기 때문에 혹평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이 가능했다.

이야기를 돌려, 다소 어려운 심리학 개념을 소개하고자 한다. 추단법 (Heuristics) 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그 이론을 제창한 다니엘 카네만의 책 제목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에서 자세하게 소개되는 개념이다. 뜻은 쉽다. 그 이름처럼, 추론하고 단정짓는다는 것이다. 이 개념이 만들어진 목적은 다음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왜 선택하는가?“. 조금 더 노골적으로 질문을 바꾸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

앞선 글에서 사람이 소리를 듣고 판단을 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런데 그 판단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포식자의 소리를 듣고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 경향성은 단순히 DNA 의 문제나 조건의 문제로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란성 쌍둥이의 음악 취향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고, 차이가 심한 경우도 존재하는 사례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직,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았으리라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아주 거칠게 표현하자면, 사람들은 정보를 받아들일 때 이미 가중치를 정해둔 상태라고 판단되고 있다. 어렵게 예매에 성공한 거장 연주가의 공연을 혼자 보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아마추어의 연주를 보는 것 중 무엇이 더 감동을 주는 공연이 될 것인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답은 갈리리라 생각하나, 이 질문이 답을 쉽게 낼 수 있는 질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에는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그 공연이 어느 시간대에 열리느냐, 어느 사이즈의 공간에서 열리느냐도 판단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정 가능하다. 이렇듯 어떤 상황, 내지는 어떤 조건에서 소리를 접하느냐가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준다. 많은 사람들은 본인의 판단이 왜 정당한지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을 통해 설명하곤 하지만, 사실 판단은 논거보다 앞서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판단으로 인해 대상의 여러 가치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전세계의 젊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예전에 비해 충분히 높은 수준의 기량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듣는 이들은 본인에게 감동을 주었던 다른 여러 연주들의 레퍼런스를 이미 가지고 있다. 연주자들 고유의 소리는, 고유의 개성은 판단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그저 듣는 이가 품고 있는 어떤 이미지에 부합하면 고평가를 받고, 그렇지 못하면 저평가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세계 최고의 콩쿨 중 하나인 쇼팽 콩쿨을 우승한 조성진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다른 연주가들은 어떻겠는가?

물론 내가 이 지면을 통해 추단이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추단법은 인간이 지닌 고도의 정신적 기술이고, AI 기술자들이 가장 닮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능력이기도 하다. 추단 과정은 너무나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그것이 어떠한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여전히 미궁인 영역이 많다. 더구나 인간은 추단을 통해 부모의 입모양을 따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집단 생활 속에서 적응할 수 있게 되었고, 음계를 알게 되었고,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즉,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추단은 필수적이다. 추단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여러 정신활동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특정 조건에서 이루어진 판단일 수 있다는 의심을 품을 필요는 있다. 내가 어떤 소리가 좋은 이유가, 혹은 싫은 이유가 수없이 생각나더라도, 그것이 본질이 아닐 수 있다. 또한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너무 빨리 판단을 해 버린 나머지 놓쳐버린 무언가가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강요가 아니다. 제안이다. 이런 마음으로 음악을 다시 들어보라. 그전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음악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태그